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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이 흐르는 책

이규임 수필집

by 꿈의 숲 2011. 5. 3.

 

수필집 "세월이 가면"  중에서

 

덤벙이 추억

 

지은이: 이규임

발행처: 도서출판 교음사 1996. 7. 10

 

  내 어린 시절을 생각하며 이 글을 쓴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몇 십 년이니 변한 것이 당연하지만 너무나 격세지감이 든다. 그 시절 을 생가하면 꿈나라 같기도 하고 요정의 숲속 같기도 하다. 너나 할 것 없이 살기 어렵던 때요, 더구나 아녀자는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살아갈 때였는데 그래도 그런 삶 속에서 향수를 느끼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 시절은 양력설은 왜놈의 설이라고 하고 크리스마스는 천주학쟁이의 설이라고 특수층만 즐겼다. 오로지 음력설만을 명절이었다. 그리하여 겨울 김장 지나면 설빔 옷과 설 차림 음식 장만에 분주했다.

 

  나는 어머님 뒤를 따라다니면서 재미로 놀다가 번번이 일을 저질러서

어머니 속을 썩여 드렸다. 대가족이라 증조부를 위시하여 어른아이까지 많은 식구의 옷을 침모 한사람과 어머니가 해냈다. 그 과정도 이제는 볼 수 없는 한 토막의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우선 명주에 물감을 들이는데 남자 옷에는 옥색. 반물. 잿빛 등이 있고 여자의 옷에는 초록. 치자. 노랑 진다홍등 나이에 따라 선택한다. 명주는 물이 곱게 들고 한번 들면 좀처럼 빠지지 않는다. 풀은 “전분” 풀을 끓여서 푸지를 하고, 오래 다듬어야 제풀에 살이 오른다. 그래서 윤이 나고 살이 두둑할 때까지 팔이 떨어져라 오래오래 다듬이질을 해야 했다.

 

  이렇게 힘이 든 아녀자들의 작업을 보고 “주야장천 긴긴 밤에 다듬이 소리”라고 시조나 풍류로 다루는 것을 보면 한국 여인상으로는 으뜸으로 손꼽혔던 모양이다.

어른들의 말에 명주는 “체에 밭혀입는다.” 혹은 사촌까지 따뜻하다 하는 비유는 과장이 아니다. 그것을 증명하듯 근래의 와서는 선호도가 점점 높아져서 명주 홑이불 혹은 안감까지 사용한다. 그러고 보니 어른들의 슬기에 감탄한 것 중 하나도 이 명주의 선호도다.

 

  어머니 방에 가면 때로는 남자 어른 옷이 예쁘게 꾸며져 있고, 색깔 고운 조모의 옷도 마련 중이고 애들의 예쁜 수버선 수엽 낭까지도 볼 수 있어 그 방에만 가고 싶었다. 더구나 호기심이 더 나는 것은 버선 칼이다. 버선 칼은 대나무로 한 자 가량 되고 끝이 버선 코마냔 다듬어져 있어 예쁜 칼 같아 가지고 싶었다.

 

  광수할멈은 버선담당이다. 어머님 곁에 분신 같이 윗목에 자리하고 앉아 있다. 남녀노소 모두가 버선을 신는 때라 항시 바쁘게 몰아친다. 헌 버선의 그 버선볼 (발바닥자리)을 예쁘게 받아 놓고 솜을 구름같이 손끝으로 펴 체에 담아놓았다가 보선모양으로 솜을 두둑하게 만든다. 그 버선에 솜을 둘 적에 이 구석 저 구석 찔러가며 두는 것이다. 그때에 사용하는 것이 버선 칼이다. 광수할멈은 이야기도 잘 해주고 내 비위도 잘 맞춰주어도 버선칼은 손도 못 대게 했다. 하루는 그 버선칼을 몰래 가져 가다가 욋목에 놓인 석간주 항아리를 건드려 깨고 말았다.

 

  겨우내 김장 김치만 먹다가 새봄 새해가 온다고 설날 떡국상에 놓는 나박김치는 별미요. 하나의 풍습이 되었다. 냉장법이라고는 땅을 파고 움을 만들어 그속에 저장했던 무와 배추를 꺼내어 바둑판 모양 고루 썰어 발그레 고춧물을 들이고 거기에 홍고추 토막을 넣고 미나리와 잣을 둥실 띄워 화채 유리그릇에 담아 내놓으면 떡국 상에는 일품이 된다. 그런 김치를 이틀 후에 사용할 것인데 내가 툭 쳐서 깨고 말았다. 석간주 항아리는 밑이 좁고 배가 불러 잘 넘어지게 되어 있다.

 

  탁 하는 소리와 동시에 콸콸 쏟아져 내려오는 나박김치 국물. 어머니가 솜 두던 옷에 확 퍼져 버렸다. 어마지두에 솜까지 흠뻑 젖었다. 내일 입으실 옷인데 어찌 하느냐 발을 동동 구르고 집안이 발칵 뒤집혔다. 그때에 낙심하던 노여운 얼굴은 처음 본 어머니의 무서운 얼굴이었다.

 

  그 밤에 다시 빨아 바느질해서 드렸다는 후문이다.

내가 하도 일을 잘 저지른다고 덤벙이라고 별명을 지었다. 그리하여 광수할멈은 나를 침방에 못 들어오게 했으나 나는 제일가고 싶은 곳이다.

윗목 장 밑에 동고리에 배추꼬리. 밤. 고구마. 등은, 항시 먹는 과줄과 다식보다 새들새들하고 맛이 좋았다. 또 문갑위에 연시 먹다 옷감에 얼룩을 지어 놓기도 하고, 목판에 콩엿은 이 아파한다고 못 먹게 하니 더 탐이 났다. 화롯불이 꼭꼭 눌러 담겨 있는 불을 밤 굽는다고 쑤석거리면 또 내어 쫓겼다.

 

  제일 큰 사고는 내가 빨간 실밥을 잘강잘강 씹고 다니다가 어머니가 바느질하던 옷에 무심히 던져버린 것이다. 삼팔 옥색 증조부의 저고리 소매에 금시 빨갛게 물이 들고 말았다. 명주에 물든 것은 아무리 빨아도 안 빠진다. 할 수 없이 다른 천으로 덧대었다. 그때는 어머니가 얼마나 화가 났던지 몹시 때려서 조모까지 나와서 만류했다. 아무리해도 원상 복구할 길이 없어 새 옷에 조각을 덧대 놓고 증조부께 어머니가 석고대죄 한 일이 생각이 난다. 범인이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손녀라 금시 화를 거두었다는 이야기다.

 

  광수할멈은 동리사람으로 남편이 방랑벽이 있어 자주 집을 비우고 아들 하나 테리고 산다. 우리 집에서 침모로 도와준다. 옛 이야기도 잘하고 우스개 소리도 잘한다. 나를 심심하면 잘 놀리고 잘 울린다.

 

  섣달 그믐날 이야기다. 오늘 저녁에 자면 눈썹이 하얗게 되어 버린다고 해서 나는 곧이듣고 안 자려고 애를 썼지만 기어이 깜빡했다. 자리에도 안 들고 앉아 졸은 듯한테 몇 시간이 지났다. 번쩍 눈을 뜨니 내 잠자리에서 자고 있었다. 일어나 보니 정말로 눈썹이 하얗게 세어 있었다. 나는 울기 시작했다. 왜 안 깨웠느냐고 푸념을 하니, 일가친척들, 어머니, 광수할머니 모두가 큰일 났다고 와하며 위로해 준다. 나는 점점 걱정이 되어 큰 소리 내어 엉엉 울다가 거울을 보니 밀가루가 흩어져서 까만 눈썹이 도로 나왔다. 이번에는 좋아서 깔깔대고 웃었다. 그 모양을 바라보던 식구들도 함께 웃었다, 광수 할멈은 울다 웃는 바보 하고 놀려댄다. 그날의 광수할멈도 그리운 사람 중 한 사람이다. (199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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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집 " 인화초"  중에서

 

나와 컴퓨터

 

지은이: 이규임

발행처: 도서출판 교음사 2003. 6. 25

 

  사람들은 연대와 환경에 따라 습성도 취미도 달라지는 것을 보아왔다. 그것은 보통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지혜라고 본다. 그러나 나는 요사이 어울리지도 않는 행동으로 친구들의 빈축을 사고 있고, 자신도 괴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요사이 시간이 없다고 친구들과 자주 어울리지 못했더니 나보고 하는 말이, 지금 당신 나이가 몇 살인지 알고 살아가는 사람이냐, 옛날 같으면 고려장 감이란다.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한세상 아등바등 살다가 이 나이쯤 되면 모든 시름 다 잊고 푹 쉬라는 나이여,

그런 뜻에 정년퇴직이란 사회제도도 있다구”.......

 

  그런데 지금 컴퓨터를 배우려 든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라는 것이다. 아마 이런 것도 네 정신이 아니고 혹 노망인지 모르겠다. 더구나 눈이나 썩 좋으면 모를까 눈뜬 청맹과니에다가 손마디는 장나무 개비같이 뻣뻣해 가지고 글자판을 하나하나 더듬듯 처 나간다니 그 고생을 왜 사서하느냔 말이어, 사람의 고생도 가지가지구나 하며 개탄을 한다. 친구들의 이런 비아냥거림을 들으면서도 한마디 대꾸도 못 한 것은, 구구절절 옳은 말이고, 모두 나를 위한 안타까움에서 나온 우정어린 충고였기 때문이다.

 

  어려서부터 몸에 젖어온 전근대적 생활양식을 아직도 못 버리고 살아가는 나다. 신세대들은 나를 보고 고생하지 말고 편히 살아가란다. 하기야 식생활을 개선해서 인스턴트식품으로 사서 먹으면 편할 것은 기정사실이겠으나, 선 듯 적응 못하는 이유는, 첫째 입맛에 맞지 않고, 위생상 불안하고, 더구나 경제성도 무시 못해서인데 이런 이유는 아전인수 격인 나의 좁은 견문에서 오는 아집인지도 모를 일이다.

 

  이렇듯 고집쟁이가 요새 필수인 컴퓨터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세월 탓이다. 세월은 흘러가고 세상도 바뀌고 나의 모든 것도 변해 버렸다. 이제는 자식들 다 분가하고 보니, 몸도 마음도 한가해졌다. 그리하여 글이 벗이 되고 보니 내가 찾아 헤매던 파랑새가 바로 이 것이란 것을 깨달았으나 해는 임이 서산에 걸리고 허송세월 한 것이 아쉬워 초조했다.

 

  바야흐로 세상은 활 짜 시대다. 각종 홍보 인쇄물이 쏟아져 들어온다. 그 중에도 사신의 서간까지도 활자로 보내온다. 편지 같은 것은 친필로 써야 예의겠으나, 나 같은 악필인 경우 오히려 단정할 것이란 생각을 했다.

 

  혹 풍문인지 모르나 지명인의 원고가 아닌 경우 글씨가 악필이면 대충 보게 된다는 이야기도 있다. 거기다 거리에는 확대하는 점포는 있으나 컴퓨터로 원고 쳐주는 곳은 별로 못 보았다.

 

  컴퓨터 그것은 오늘 날 꼭 필요한 문명의 이기이며 생활의 필수라고 보고 컴맹이란 유행어도 젊은이들의 전용물이라고 보아왔다. 아무리 필요해도 나 같은 사람은 배울 꿈도 못 꾸는 타산지석으로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뜻밖에 희소식이 날아왔다. 문우 전여사의 경험담이, 번거롭게 서둘지 말고 조금만 가르쳐 주면 간단한 원고정도는 칠 수 있다고 한다. 상상조차 못했던 일이 가능성까지 생각하게 되니 흥분으로 밤잠을 설쳤다.

 

  어느 날, 아들네를 갔다. 마침 제방에서 컴퓨터를 치고 있었다. 불쑥 아들보고 나도 배워 보고 싶다고 했더니, 어머님이 배워보고 싶다고요 하며 재차 묻는다. 신기해서 애들보고 할머니가 컴퓨터 배운다고 하신다 하고 큰 소리를 지르니 방방에 있던 손자들이 뛰어 나와서 큰 사건이나 생긴 것 같이 흥분하고 야단이다.

 

그 후, 마침 아들 사무실에 놀고 있던 컴퓨터가 있어 집으로 가져왔다. 일요일이면 교회에서 만나 점심 대접받고 바래다주는 김에 가르쳐주고 간다.

 

  처음 손가락 두 개로 처서 활자가 되어 나오니 다 된 것같이 황홀하기만 했으나 그것이 아니었다. 어물어물하다가는 감쪽같이 없어지기도 하고 엉뚱한 줄이 생기기도 했다. 점점 어려워졌다. 눈치를 보아 가며 보관이니 삭제니 읽기니 하며 어렵게 배워 나간다.

 

  오늘은 인쇄하려고 보니 가득한 화면 속에 오자가 있는 것을 보고 당황했다. 몇 자 때문에 다시 치기는 너무 안타깝고 시간이 없다. 부분 삭제란 생각이 떠올랐으나 도대체 어떤 방법인지 알 길이 없다. 여기저기 눌러보았더니 감쪽같이 몽땅 달아나 버린 것이 아닌가. 섬뜩했다. 책을 뒤적여 보았으나 알 수가 없다.

 

  우리 집은 이상한 징크스가 있다. 남자들의 직장이나 사업체에 아녀자들이 급한 일 아니면서 방문이나 전화든 하는 것이 암암리에 금기 되어있다. 그런 습성인지라 아들 회사에 전화 건다는 것이 신경이 몹시 쓰인다. 그래서 주저하다가 할 수없이 몇 번이나 전화를 걸곤 했다. 번번이 부재다 비서 왈, 요새는 몹시 분주해서 외출이 잤단다. 할 수 없이 단념하고 생각에 젖는다.

 

  과연 친구 말따나 내가 비정상적인가. 아무리 필요해 하는 배움이지만 오늘의 나는 주책 맞은 늙은이로만 보이는 것은 아닌가. 나이와 분수에 걸맞은 생활을 하는 사람이 아름답다고 했는데 나를 어떻게 보아줄까, 이쯤해서 고생을 고만두고 친구들과 재미나게 어울릴까, 아니다 시작이 반이라는데 참고 견디면 두 손가락만 가지고도 찬찬히 처 나갈 수 있지 않을까 혼자서 자문자답이다.

 

  괴물 같은 컴퓨터다. 기계인지 살아 움직이는 물건인지 분간할 수조차 어려운 두뇌의 소유자다. 어미에게 일러줄 때 막내는 답답해서 화를 내며,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삼각형 물체를 손가락으로 눌으며 예 재하고 몰고 다니던 것이 커서라는 이름이다. 그 살아 날뛰는 것 같은 커서가 나를 보고 “용용 죽겠지” 하고 놀려댄다. 1997/1/ 隨筆文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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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작 수필중 "엄마가 겪은 6.25" 중에서  

 

지은이: 이규임 

발행처: 도서출판 교음사 2003. 6.25

 

아이 업고 80리 길

 

  담요와 옷가지를 꾸린 괴나리봇짐을 청처짐하게 등에 메고, 낡아빠진 밀짚모자를 푹 눌러쓰고 걸어가는 70노옹과, 검정 몸뻬 차림에 어린아이를 십자띠( 업는 포대기대신 간단한 X로된 띠로 50년대 들어옴 )로 단단히 업고 수건에 물을 축여 늘어뜨린 20대 여인과, 쌀되나 넣은 자루를 긴 나무지팡이에 꽤들고 둘이 마주잡고 가는 행색은 누가 보아도 부녀간 같이 보이리라. 우리는 지금 몸을 피하려고 양수리(兩水里)에 산다는 아버님 친척 댁을 찾아가는 길이다. 양수리는 여기서 80리. 서울로 가는 길목으로, 서울 반은 간 셈이 된다고 한다. 아버님이 장차 서울따님 댁으로 가실 의향으로 이 방향을 잡은 듯 했다.

 

  나는 막내를 업고 걸어가면서 두고 온 두 아이들 생각에 잠긴다. 아침에 잠 깨보니 어미가 없으니 얼마나 놀랐을까. 밥이나 먹었나, 이렇게 발길이 안 떨어질 줄 알았다면 오지나 말 것을, 발 거름 거름마다 아이들 얼굴뿐이다. 기약 없는 이별은 하염없이 눈물만 흐른다. 그러나 앞서가시는 아버님을 뵈면 이내 현실로 돌아간다. 서울 쪽으로 내려갈수록 이미 인민군이 점령한 곳이기에, 오솔길로 조심조심 걸어가다가도 부득이 마을 중심을 지나갈 때도 있다. 거기에 지서(支署)라는 간판대신 문짝만 한 내무서(內務署) 간판을 처음 보는 순간 소스라쳐 놀랐다. 그런 나를 누가 볼까봐 이내 수건으로 얼굴을 문지른다. 아버님도 이곳에 지면(知面)이 많다며 혹 누구라도 만날까 조마조마하다며, 넓은 밀짚모자에 안경을 쓰고 고개를 푹 숙이고 걸어가신다.

 

   논두렁에서 잠시 쉬면서 넌지시 농부를 떠본다. 말하길 검문소가 곳곳에 있으나 아직은 여행자를 그리 심하게 단속은 안 한다고 하며, 혹 검문을 당하면 사유가 마땅해야 보내 줄 터이니 조심을 하란다. 그 말을 듣고 보니 동정 받을 사유를 확실히 만들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아버님게 말을 건넨다. “아버님, 만일 누구든지 우리보고 어디를 가느냐고 행색을 물으면 저를 친딸이라고 하세요. 친정어미가 아파서 잠시 다니러 왔다가 난리가 났노라고, 서울 집에는 어린애 둘만 남겨 놓아 빨리 가야 하겠기에 딸 혼자 보낼 수 없어 따라 나섰노라고 친아버지같이 간곡히 말 하세요”

 

  나는 이런 말로 연극 아닌 연극을 꾸미면서, 이제부터는 아버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겠어요. 하며 어색하게 아버지하고 불러본다. 평상시에는 시아버님이 어려워서 앞에서 말 한마디 선 듯 못하던 터인데, 당돌하게 말씀을 드리니 고개를 끄덕이신다. 이 무법천지에 길을 나섰다는 것이, 그들에게는 석연하지 않을 것 같아, 동정을 받을 심산으로 이렇게 꾸민 연극이다. 우리가 이다지 몸을 조심하고 사린 것이 가소로운 일 같으나, 이렇게 세심한 주의를 하였기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훗날 말들을 했다.

 

  몇 시나 되었을까, 배가 몹시 고프다. 이 경황에도 공복을 느끼는 것은 살았다는 징조일까. 시계를 보니 점심때도 훨씬 지났다. 형님이 뭉쳐준 주먹밥을 먹으며 이제야 생각이 났다. 집에서 떠날 때, 그 북새통에 우리 쌀자루는 운동장에 놓아둔 채 오고 말았다는 것을, 지금 들고 오는 이 쌀도 한 톨이 아쉬울 터에 형님이 나눠주신 것이다. 또 코끝이 찡하다. 그때다. 아버님 앞에 어떤 분이 반색을 하며 인사를 한다. 옛말에 아는 얼굴이 더 무섭다더니, 공연히 진땀이 난다. 아버님은 태연하게 대하며 내가 말 한대로 서울 가야하는 사정을 이야기하니, 그는 진심으로 동정을 한다. 지성이면 감천이란 말이 허사가 아니구나 하며 마음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노령의 아버님이 얼마나 힘이 드실까 하고 바라보니, 청처짐한 괴나리봇짐이 초라해 보일 뿐 생각보다는 덜 피곤해 하신다. 워낙에 시골길을 자주 걸어보신 듯 하다. 나는 행색이 말이 아니다. 평시에 10리도 안 걸어 본 위인이 애를 업고 80리 길을 나섰으니 오죽하랴, 한발 한발이 내 정신이 아니다. 길에서 사람을 만나면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고, 등 뒤에서 누가 불러 세우는 것 같아 조마조마해서 그저 땅만 내려다보고 걷는다.

 

  막내 美는, 등에서 흔들흔들 하는 바람에 종일 잠만 자더니, 저녁나절부터는 몹시 보챈다. 어느 주막집 툇마루에 내려놓고 보니, 장다리가 울긋불긋하게 피가 맺혀 띵띵 부어올라 보기에도 몹시 애처롭다. 아버님이 보실까 봐 돌아앉아 어루만지며 눈물짓는다. 이 어린것이 무슨 죄로 이 고생을 해야 하나, 같은 동족끼리 왜 총부리를 들이대야 하는가. 이념의 싸움이라고들 말을 하지만 도대체 그것이 무엇이 길래 사랑하는 모든 것을 동댕이치고 이렇게 도망을 가야 하나, 나의 짧은 식견으로는 도저히 이해도용서도 할 수 없다. 다만 이 판국에는 몸을 피해야 살 수 있다는 다수의 의견을 따를 뿐이다. 이런 생각도 순간 묵묵히 그저 땅만 보고 걷기만 한다. 아버님도 아무 말씀 없이 걷기만 하신다.

 

  이미 밤은 깊었다. 목적지 양수리가 얼마 안 남았단다. 뛸 듯이 기쁘다. 그곳에 가면 어떤 기대나 약속이 되어 있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마음이 편하고 기뻐질까. 그 마음은 다만 타향이라는 안도감과 공포심에서 벗어남이다. 어느 말장난에도 타향이 편하고 좋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건만, 아무 의미가 없던 양수리가 오늘에 와서는 마음의 안식처요 구세주가 될 줄 누가 알았으리요.(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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