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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대만,홍콩영화

황토지 黃土地 Yellow Earth 1984년

by 꿈의 숲 2015. 1. 1.

 

 

황토지 黃土地 Yellow Earth 1984년 중국

감독 : 첸 카이거 陳凱歌 Kaige Chen

출연 : 담탁, 설백, 왕학기, 유강, 하옥당

 

첸카이거는「황토지」에서 영화적 표현을 형상화하기 위해 줄거리를 극단적으로 단순화시켰다. 영화의 시대적, 지리적 배경은 1939년 산시성(陕西省) 북부의 산베이(陝北) 고원지대이다. 황허 최상류 유역의 거의 수목이 없는 단조로운 황토언덕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이 풍경은 그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적이자 동지이다. 중국 신화에 의하면 황허와 고비사막의 황사폭풍으로 누렇게 뒤덮인 이 지역이 국가의 발상지라고 한다. 첸카이거는 이 풍경을 신비화시켜 묘사했다. 중국 역사에 등장하는 모든 권력자들이 이런 신비화에 기여해 왔고 지금도 기여하고 있다. 황허는 이 영화를 규정하는 요소로서 변화와 변화능력에 대한 의미상이다. 또한 넓게는 중국 문명의 총체이기도 하다. 마찬가지로 황색은 중국 황제를 상징하는 색깔인 동시에 중화인민공화국 국기인 오성홍기(五星红旗)를 장식하는 색이기도 하다. 지난 2천년 동안 중국의 문학과 미술에서 미의 이상은 부드럽게 활 모양으로 구부러진 언덕과 신비한 풍광을 지닌 중국 남부의 산맥들로 표현되어 왔다.

 

첸카이거가 그런 전통미를 거부하고 황토로 뒤덮인 대지를 영화의 배경으로 선택한 것은 이곳과 이곳 사람들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서 그는 미래의 희망을 찾았다. 중국 문명을 일군 중국인의 진정한 표상임에도 불구하고 발전과정에서 소외된 사람들 속에서 첸카이거는 정치선전과 문화혁명에 휘둘린 인민과 개인의 정체성을 재발견했다. 그들은 외부의 영향을 뒤늦게 접한 만큼 아직 순수함을 지니고 있다. 그 순수함이 바로 그들의 특성이자 매력인 것이다. 하지만 순수함은 내향성과 경직성의 원인이 되기도 하는데, 그들이 변화를 꺼린다든지 외부인이 그들에게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든지 하는 것이 모두 그런 연유에서이다. 「황토지」의 테마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는 인간과 풍경이다. 감독은 자기 자신의 확고한 기준을 가지고 인물들을 묘사했으며, 인물들의 뚜렷한 개성을 통해 세계를 파악했다. 그래서 영화에는 인간에 대한 애정과 분노가 함께 담겨 있다. 이것은 인간에게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해 온 체제와 그것을 묵묵히 참아내야 하는 현실에 대한 고발이다.

 

어느 날 팔로군 장교인 구칭(顧靑)이 산베이 작은 마을에 온다. 민요의 멜로디에 혁명적 가사를 붙여 옌안의 당 선전사업에 이용하기 위해 그는 중국 각지를 돌며 민요를 수집하고 있었다.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구칭은 결혼식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첸카이거는 여기서 긍정적인 삶의 의지가 결여된 중국의 현실을 인생의 즐거움과 지독하게 가난을 대비시켜 암시하고 있다. 현대 중국 사회야말로 바로 그 결핍을 견뎌 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결혼식 피로연 장면은 화려하게 연출되었다. 그 장면들 어디에서도 가난의 고통을 찾아볼 수는 없다. 다만 베일에 가려진 신부만이 즐거운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다. 한편 여주인공인 13세의 소녀 추이차오(翠巧)는 관찰자로 등장한다. 그녀는 47세라는 나이에 비해 너무나 늙어 보이는 아버지와 그녀의 어린 남동생 한한(憨憨)과 함께 이 지역의 전형적 토굴마을에서 살고 있다. 이 마을은 원시적 이미지를 간직하고 있다. 낮선 이방인은 점점 더 그들의 폐쇄된 세계로 들어가 그들이 지금까지 꿈도 꾸지 못했던 사상들은 전파한다. 우연히 구칭은 추이차오 가족의 토굴에 거처를 정하게 된다. 함께 저녁시간을 보내면서 그는 아이들에게 옌안의 사회개혁에 대해, 여성교육에 대해, 그리고 자유롭게 배우자를 선택할 수 있는 여성의 권리에 대해 이야기해 준다. 그러면서 공산당과 옌안은 미래의 희망으로 떠오른다. 그러나 이런 희망은 이 영화에서 별 의미가 없다. 오히려 구칭과 옌안은 수천 년간 경직되고 고립되었던 사람들에게는 그저 타자일 뿐이다. 그러나 추이차오에게는 구칭과 옌안이 더 나은 미래에 대한 약속이자 과거의 짐과 현재의 구속에서 해방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다.

 

새로운 것과 옛것 사이의 반목은 이 영화의 줄거리를 관통하고 있다. 어둠속에 잠긴 위험한 강과 끝없이 펼쳐지는 자연풍광이 영상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반면 인간은 자연 속에 파묻혀 있다. 이 폐쇄적인 상황에서 추이차오는 구칭과 함께 떠날 날만을 손꼽아 기다린다. 소녀의 꿈은 소박하기 그지없다. 수킬로미터 떨어진 강에서 물을 길어오고 밤에는 옷을 짜고 하는 일을 더 이상 하지 않고 오래된 민요 대신 낯선 이방인이 가르쳐 준 혁명가를 부르는 것이 그녀의 꿈이다.

한편 “나는 깨어 있다”라고 외치며 전승된 관습을 버리고 자신의 무기력과 경직된 삶의 구속을 떨쳐 버리려는 그녀를 통해 점차 해방의 과정이 보인다. 이러한 해방감은 정권 장악을 눈앞에 둔 공산주의자들의 그것과 일맥상통한다. 하지만 그런 행방감은 곧 끝이 난다는 것을 바로 다음 장면이 보여주고 있다. 토굴집의 어두운 구석에서 추이차오의 아버지는 그녀에게 마을의 한 남자와 결혼하라고 말한다. 아버지는 딸을 팔아 버린 것이다. 더구나 구칭이 갑자기 마을을 떠나게 되면서 추이차오의 꿈은 산산조각 난다. 이제 억압을 강요하는 전통이 승리한 듯 보인다.

 

겉보기에 추이차오의 결혼식 피로연은 영화 앞부분에서 관찰자로서 그녀가 목격한 그것과 구분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당자자인 그녀에게는 희망 없는 세계로 들어가는 고통스러운 의식이다. 따라서 그녀의 결혼식은 모든 시대 중국 여성들의 운명을 환기시키며, 또다시 재생산되는 과거의 악습을 의미한다.

추이차오에게 옌안으로 상징되는 희망은 이제 하나의 신화가 되어 버렸다. 마찬가지로 마오쩌둥의 ‘인간해방’도 사회주의 도그마의 변질된 징후 속에서 협소함과 경직성으로의 귀환을 의미한다. 소녀의 갑갑한 현실은 위압적인 황허에 반영되어 있다. 황허는 사회상황의 상징이다. 추이차오는 홀로 희망을 노래하며 작은 배를 타고 강물을 따라 사라진다.

 

남동생 한한의 비명과 함께 날이 밝는다. 거친 폭풍우를 연속촬영으로 빠르게 담아 낸 세 장면이 이어진다. 모든 것을 삼켜 버린 강물과 무심하게 강변 모래밭에 남겨진 소녀의 신발은 그녀의 비극적 종말을 짐작하게 한다. 그리고 다시 황색 대지가 화면을 채운다. 황토는 저항하는 개인의 패배를 상징한다. 또한 중국공산당을 연상시킨다. 공산당은 해방을 약속했지만 선행했던 모든 통치체제와 마찬가지로 인간을 기만했다. 다만 모호하고 헛된 희망에 이끌린 추이차오가 행방불명된 것으로 처리함으로써 실낱같은 가능성을 남겨 두었다. 그녀가 배를 저어―그녀와 함께 중국 민족도―가고자 했던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가능성을.

 

「황토지」의 마지막 시퀸스는 전체적 테마를 다시 한 번 극적으로 종합하고 있다. 구칭은 추이차오를 예안에 데려 가기 위해 마을로 돌아온다. 그러나 이미 그녀는 떠나고 없다. 마을 주민들은 기우제를 올리기 위해 황허 강변의 고원에 모인다. 점점 고양되는 엑스터시 속에서 용왕상(龍王像) 주위를 돌며 춤을 춘다. 이것은 신화와 종교의 전통이다. 이런 기우제를 지내듯이 공산당의 대중운동 역시 마오쩌둥이라는 우상의 주변을 맴돌고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종결 시퀸스가 진행되면서 군중의 엑스터시와 긴장감이 추이차오의 옷조각, 슬퍼하는 아버지, 그리고 용왕 상을 순간적으로 확대시켜 나가는 카메라를 통해 영화는 급반전된다. 결국 용왕상은 완전히 화면을 메우고 인간 위에 군림하다. 그 권력의 폭력에 떠밀려 사람들은 강물로 돌진한다. 단지 한한만이 온 힘을 다해 군중에 휩쓸리지 않으려 한다. 그것은 수많은 사람들의 운명이 대중선전에 압도당하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광활한 황색 대지의 지평선에 떠오르는 인간해방의 상징인 구칭, 그리고 군중에 대항하는 한한의 순수함과 의연함이 관객에게는 희미한 불빛으로 남는다. 하지만 그 역시 살아남지 못한다.

 

출처: 중국영화사

슈테판 크라머 지음 / 황진자 옮김

도서출판 이산 2000.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