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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걸음흔적

탄천(炭川)의 가을1

by 꿈의 숲 2011. 10. 21.

 

 

 

 

 

 

 

 

 

 

 

 

 

 

 

 

 

 

 

 

 

 

광평교

 

 

 

 

 

 

 

 

탄천(炭川)의 가을 / 2011.10.21 오전 / 수서동

 

 

탄천의 유래

 

탄천(炭川)은 한강(漢江)의 지류(支流)로서 경기도 용인시 구성 읍에서 발원(發源)하여 성남시를 거쳐 서울의 강남구(江南區)와 송파구(松坡區) 사이를 흘러 한강(漢江)으로 유입(流入)되는데 총연장(總連長)은 35.6km이며 성남시를 관통(貫通)하는 구간(區間)이 25km이다.

 

탄천은 한성백제(漢城百濟)의 혼(魂)이 깃들어 흐르는 민족사(民族史)의 한 획을 긋는 민족의 정맥(精脈)이라 할 수 있는 민족(民族)의 영광(榮光)스러운 문화(文化)의 터전이며 성남시가 천하(天下)에 자랑할 역사문화(歷史文化)의 명소(名所)이다.

 

백제시조(百濟始祖) 온조대왕(溫祚大王)께서 하남위례성(河南慰禮城)으로 이도(移都)한 서기전(西紀前) 6년 이후 온조(溫祚) 28년(서기10) 다루(多婁)를 태자(太子)로 봉(封)하고 세자궁(世子宮)을 지금의 창곡동(倉谷洞)에 지어주어 세자(世子)가 병권(兵權)을 장악(掌握)하여 군사들을 통수(統帥)하였으므로 이 지역(地域)은 강력(强力)한 백제 군사들의 훈련장(訓練場)으로 쓰이면서 군사들에게 밥과 국을 끓여 먹이기 위하여 장작을 연료(燃料)로 때었고 장작에서 나오는 수많은 숯을 후일에 군사들에게 먹일 냇물을 정화(淨化)시키기 위하여 물에 버리고 감으로서 숯이 내를 이루었다고 하여 부쳐진 이름이 숯내였다. 그러다가 한문(漢文)으로 탄천(炭川)이라 표기(表記)하게 되었다.

 

탄천(炭川)은 태종(太宗) 7년(1407) 10월 12일 기록(記錄)에 의하면 임금이 탄천에서 유숙(留宿)한 기록이 있고 이어서 태종(太宗) 12년(1419) 9월 16일에도 탄천에서 유숙하였고 세종(世宗) 9년(1427) 10월 4일에는 갈매재(葛馬峴)의 남(南)쪽에서 사냥하고 탄천(炭川)에서 유숙(留宿)한 기록들이 모두 낙생행궁(樂生行宮)에서 유숙(留宿)한 것으로 이 지역에 전해오고 있다. 조선시대(朝鮮時代)에는 탄천에서 전국(全國)의 군사들을 모아다가 11만~12만 명의 대군(大軍)으로 대열(大閱)이라는 군사훈련(軍事訓鍊)을 한 기록이 십 수회(十數回)나 있다.

 

이런한 탄천은 수많은 역사(歷史)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말없이 흐르면서 물길이 수없이 바귀었으나 지금도 우리에게 많은 자연(自然)의 섭리(攝理)를 일깨워주고 있다. 탄천의 생태계(生態界)는 우리생활과 밀접(密接)하게 움직여 줌으로서 토종(土種)새와 철새들이 다투어 깃들이고 시민들의 환경정화노력(環境淨化努力)에 힘입어 물도 점차 맑아져 많은 종류(種類)의 물고기가 넘쳐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탄천에 산책로(散策路)와 물놀이장은 항상 즐거움이 넘치는 명소(名所)로 자리매김을 한지 오래되지 않았는가? 이처럼 맑고 아름다운 탄천을 잘 살려서 우리 모두의 보배로 삼아야 할 것이다. 백만 성남시민과 함께 살아 숨 쉬게 유구(悠久)한 한성백제(漢城百濟)의 문명(文明) 산실(産室)이었던 명소(名所)이므로 한성백제(漢城百濟)의 찬란(燦爛)한 문화역사(文化歷史)의 전승(傳承)과 함께 새 시대의 신문화(新文化)를 접목(接木)시켜 한민족(韓民族)의 영원(永遠)한 문화(文化)의 성역(聖域)으로 키워나가 찬란(燦欄)한 역사문화(歷史文化)의 명소(名所)로 탄천이 거듭나도록 하여야 한다.

 

탄천의 유래 

자료출처(성남문화원): http://seongnamculture.or.kr/index.a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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