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발걸음흔적

소래산(蘇來山) 가을풍경 1

by 꿈의 숲 2007. 10. 29.

 인천대공원에서 바라본 소래산

 

 

 중턱에서 바라보이는 소래산

 

 

 

 

 

 

정상근처에서 내려다 보이는 외곽순환도로/ 끝 부분이 곧 송내I.C가 나올 것이다. 

 

멀리 인천대공원 인공호수가 보인다. 

 

 

 흐릿해 보이지 않지만 맑은 날은 소래바다가 보인다.

 

 시흥시가 내려다 보인다.

 

 

 

 

 

 소래산(蘇來山) 가을풍경/ 2007.10.29



* 관람시기 : 연중  

 

* 주변에 주요 유적지 :소래상마애상 (국가보물1324호)   

 - 소래산 마애상은 병풍바위(혹은장군바위) 암벽에 서있는 모습의 부처를 얇은 선으로 새긴 것으로 균형잡인 신체에 사각형의 얼굴, 원통형보관, 섬세한 발가락 표현등이 특징적인 세련된 작품이다.   

 

* 위치 : 대야동 140-3 번지 (소래산 중턱)

 

* 대중교통

- 전철4호선 안산역에서 버스 61, 좌석1번 이용, 안양역에서 31-7번이용   

- 국철1호선 소사역에서 마을버스1번 부천역에서 마을버스015번 이용

  

* 자가용 : 시흥시와 부천시 경계 지점 39번 도로 하우고개 길 (한국전력공사 뒤편)

 

* 대표음식 :하우고개 주변 가든, 인근 시가지 갈비, 오리고기, 보리밥 집

  

* 관광자료

- 소래산은 여느 산과 달리 알맞은 경사와 적당한 바위타기 그리고 산림욕장까지 갖추고 있다. 산의 중턱에는 고려시대에 조성돤 소래산 마애상이 거대한 바위에 선각되어 소래산 명물로 자리잡고 있다. 정상에 오르기 전 잠시 숨을 돌리고 뒤를 보면 시흥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내원사 입구에서 정상까지 5㎞에 달하는 산책로는 각종 체육시설, 독서하는 숲, 원목 로프를 이용한 힘 기르는 숲으로 정비되어 있다. 또 소암천 약수터와 청룡 약수터 등은 양질의 물을 제공해 소래산 산림욕장을 찾는 모든 이들의 갈증을 식혀준다 . 날씨가 맑은 날에 정상에서는 육안으로 서울 인근 서해바다가 내려다 보인다  


* 문헌자료

- 소래산은 경기도 시흥시와 부천시, 인천광역시 남동구의 경계를 이루는 해발 299m의 산으로서, 조선시대에는 인천부의 진산(鎭山)으로 널리 알려졌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을 비롯한 조선시대 각종 지지자료(地誌資料)에는 “소래산은 부의 동쪽 24리 되는 곳에 있는데 (인천부의) 진산이다(蘇來山在府東二十四里鎭山)”라는 기록이 있다.

『대동지지(大東地志)』에는 “소래산은 부의 동쪽 20리 평원에 우뚝 서 있다(蘇來山東二十里卓立平原)”고 기록하고 이어서 “고려 고종 43년에 대부도의 남양별초가 밤에 나가 인주 경계의 소래산 아래서 몽골병 백여명을 들이쳤다(高麗 高宗43年大部島南陽別抄夜出仁州境蘇來山下擊走蒙兵百餘人)”는 설명을 싣고 있어, 소래산이 현재의 시흥과 인천, 부천을 연결하는 중요 지점이었음을 알려준다.

『현종개수실록(顯宗改修實錄)』에는 11년 12월 7일 “총융사 서필원이 아뢰기를, ‘신이 일찍이 병영(兵營)을 옮길 일로 우러러 품의했었습니다.

경기의 고을에 나가서 지형(地形)을 살펴보았더니, 인천(仁川) 소래산(蘇來山) 아래가 교장(敎場)을 설치할 만하였는데, 들으니 인평위(寅平尉)와 해숭위(海嵩尉)의 둔장(屯庄)이 그곳에 있다고 합니다. 본영에서 사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라는 기사가 있는데 이것 역시 소래산 인근이 바다와 내륙을 아우르는 중요 연결 지점이었음을 잘 보여준다.

인조반정의 공신이자 대동법 실시를 주창했던 잠곡(潛谷) 김육 선생은 1623년 ‘계해년 입춘에 소래산을 지나며’라는 시에서 “나그네는 바다 구름 끝을 향해 가는데(客鞭遙指海雲端), 소래산에 들어서자 길을 가기 어렵구나(山入蘇來道路難), 한 조각 봄빛은 어느 곳에 숨었는가(一片春光何處在), 저녁 바람 잔설 속에 추위 못 견디겠네(晩風殘雪不勝寒)”라고 찬 기운이 남아있는 소래산의 정취를 읊기도 했다.

또 조선의 정조 임금은 1797년에 수원 현륭원으로 행차하는 도중 시흥시 지역을 지나면서, “깃발을 펄럭이며 바닷가로 돌아드니(風海門廻), 소래산의 수려한 빛 눈이 번쩍 열리도다(秀色蘇來眼忽開), 드높은 군자봉 바로 앞에 솟았으니(君子峰高入指點), 혹여 그 안쪽에 숨은 인재 있으려나(?非中有隱淪才)”라는 시를 지었는데, 널리 인재를 등용하고자 하는 임금의 뜻과 함께 소래산의 빼어난 경치를 잘 전해주고 있다.


자료출처:

http://www.siheung.go.kr/index.asp



'발걸음흔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중동 문화원 1  (0) 2007.11.01
소래산(蘇來山) 가을풍경 2  (0) 2007.10.30
인천대공원(국화전시)  (0) 2007.10.24
인천-상해 국제 조각 교류전 4  (0) 2007.10.24
인천-상해 국제 조각 교류전 3  (0) 2007.10.23